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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마이크로 은퇴, 잠시 커리어 숨 고르기 ...조카의 퇴사 얼마 전 조카가 잘 다니던 회사를 갑자기 그만두었다. 12년은 쉴 거라며, 다낭으로 한 달 여행을 준비하며 말했다.“쉼표가 필요한 시점인 것같아요. ‘마이크로 은퇴’ 입니다.”“‘마이크로 은퇴(Micro-retirement)’가 뭔데?” 커리어 중간에 짧은 휴식기를 두는 개념이란다. 전통적으로 정년을 앞두고 회사생활 마지막에야 은퇴를 하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인생주기 혹은 회사 경력의 흐름 중간 중간 ‘쉼표’를 배치한다고 한다. 몇 달, 혹은 12년쯤. 일을 잠시 내려놓고 여행을 하거나 무언가를 배우거나, 그냥 쉰단다. 다시 돌아올 것을 전제로 한 ‘전략적 멈춤’이라는 허울(?)까지 둘렀다. 나는 조카에게 다그치듯 물었다.불안하지 않느냐. 경력 공백은 어떻게 할거냐.돈은 벌어놓았니.조카가 웃었다.“쉬는 것도 용기가 필요해요. 하나를 선택하면 하나는 포기해야죠. 쉬면서 앞을 더 멀리 보려고요. 100세 시대잖아요.” 현실에서 도망가는 거 아니냐고 다시 물었다. “직업을 AI분야로 바꾸어볼까 해요. 관련 공부도 좀 해야 할 것같고…. 이제부터 계획을 잘 세워보려구요.”열심히 달리며 성실하게 일하는 것만이 나를 증명하는 줄 알았던 나에게 ‘쉬는 용기’는 너무도 낯설고 어려운 말이다.돌아보니 늘 멈추는 것을 두려워했고, 쉼은 게으름이라 생각해왔다. ‘쉬는 용기’는 나에게 배부른 사치라고 생각했던 것같다. 쉬면 뒤처질까 두렵고, 멈추면 사라질까 늘 불안했다.그런데 요즘 세대는 참, 너무 다르다. 그들은 일을 삶의 전부로 두지 않는다. 필요하면 멈추고, 다시 시작한다. 쉬는 동안 자신을 되돌아보고 거침없이 방향을 바꾼다. Z세대의 숨 고르기지난 4월 채용 플랫폼 캐치의 조사에 따르면 Z세대 취업준비생의 65%가 전통적 은퇴보다 ‘마이크로 은퇴’를 선호했다. 60%는 실제로 시도할 생각이 있다고 했다. 가장 큰 이유는 여행이었다. 그 다음은 취미, 건강, 자기계발이었다. 쉬는 시간은 낭비가 아니라 재정비의 과정이 되었다.최근 직장갑질119와 글로벌리서치의 조사에서는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이 가장 바라는 권리로 연차휴가를 꼽았다. 전체 응답의 28.1%. 그중 절반은 “유급 연차를 자유롭게 쓰지 못한다”고 했다. 누군가는 쉬고 싶어도 쉴 수 없고, 또 누군가는 쉬지 않으면 버틸 수 없다.이 두 현실이 지금의 노동 환경을 가감없이 말해준다. HR의 새로운 언어최근 몇 년동안 HR(인사관리) 분야에는 새로운 말들이 대거 등장했다. 일을 계속하지만 마음은 떠난 ‘조용한 퇴사(Quiet Quitting)’.중간관리자 승진을 미루거나 거부하는 ‘언보싱(Unbossing)’.대규모 이직이 이어지는 ‘대퇴사 시대(Great Resignation)’.그리고 한 직장에 머무는 ‘대잔류 시대(Big Stay)’.오늘도 주변에서는 번아웃을 말하고, 회사에서 누군가는 떠나고, 누군가는 남는다. 업무 그룹 메시지에서 함께 일하던 동료의 퇴장 메시지가 뜰 때마다 여러 가지 감정이 교차하기도 한다. ‘마이크로 은퇴’는 쉼과 일 사이의 균형을 찾으려는 요즘 세대의 새로운 실험처럼 보인다.회사도 돌아올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 있다. 리프레시 제도, 유연한 휴직, 복귀 프로그램. 쉼표의 의미조카의 다낭행을 떠올린다. 그 여행은 도망이 아니라 앞을 향한 준비였다. 그렇게 떠나기 전에 응원해주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사실 조카의 쉼이 독이 될 수도, 약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인생에서 잠시 1, 2년 쉬어간다고 큰 일이 나는 것도 아니다. 조카는 다낭 한 달 여행 브이로그를 유튜브에 올리고 있다. 혼자 너무도 야무지게 노는 조카가 부럽고, 또 쉼표가 주는 다른 의미를 느꼈다. 나는 이제 마이크로 은퇴가 아니라 이제 진짜 인생 후반의 정년 퇴직을 기다리고 있다. 솔직히 불안하다. 하지만 마음을 바꾸었다. 하나의 문을 닫고 또 하나의 문을 열 때, 나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잠시 멈추는 시간은 오히려 단단한 힘이 되는 시간일 것이다. 조카의 쉼표와는 다른 쉼표를 맞이할 나이다.멈출 용기. 그래, 멈춤도 인생의 일부다. 용어 설명 / “마이크로 은퇴(Micro-Retirement)”인생의 마지막이 아닌 커리어 중간에 잠시 일을 멈추고 쉬는 ‘짧은 은퇴’를 말한다.여행, 자기계발, 건강 회복 등 재충전을 위해 일정 기간 휴식기를 갖는 것을 의미한다.Z세대와 밀레니얼 세대 사이에서 확산 중이며, 장기적인 경력 지속을 위한 ‘전략적 멈춤’으로 여겨진다. 
2025.10.27

[데스크 칼럼] 사내연애까지 잡아낸다고? ... GRC(거버넌스·리스크·컴플라이언스) 글로벌 비위 신고 산업 성장과 로펌의 변화 지난 10월 16일, 세계 최대 식품기업 네슬레가 2년 안에 전 세계 직원 1만6천 명을 줄이겠다고 밝혔다. 필리프 나브라틸 최고경영자(CEO)는 비용 절감 목표를 30억 스위스프랑(약 5조3천억 원)으로 상향 조정하며, 인사·회계·IT를 본사 중심으로 통합하고 공유 서비스와 자동화를 강화하겠다고 발표했다. 사실, 겉으로는 효율화를 위한 구조조정이지만 그 배경에는 조직 신뢰 회복, 윤리경영이라는 더 큰 과제가 숨어있다. 지난 9월 초 직속 부하 직원과의 부적절한 사내연애가 회사의 행동강령(Code of Business Conduct)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로랑 플렉스 전 CEO을 전격 해임했다. 이어 2주만에 파울 불케 회장까지 조기 퇴진이 결정되었다. 해당 사안은 익명 제보 채널을 통해 접수된 내부 신고를 계기로 조사가 시작되었다. 보수적 기업문화로 알려진 네슬레가 보여준 것은 GRC 시스템을 통한 빠른 조사와 명확한 절차, 그리고 투명한 기록이었다. 익명 제보는 자동으로 GRC시스템에 등록되고, ‘중대한 사건’으로 분류되어 즉시 조사 단계로 전환됐다. 조사 전 과정은 이사회에 보고되고 표결을 거쳐 인사 조치가 이뤄졌다. 모든 결정의 근거와 책임은 GRC 시스템에서 진행되었고, 기록되었다. 네슬레의 비위신고 핫라인은 네덜란드 스피크업(SpeakUp)이 맡고 있다. 지난해 처리한 네슬레 관련 신고는 약 3천 건에 달했고, 그중 20%가 사실로 확인돼 100명이 넘는 직원이 회사를 떠났다.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러한 비위신고·리스크 관리 산업의 글로벌 시장 규모가 현재 180억 달러(약 25조 원)에 이르렀다고 전하고 있다. 내벡스(Navex), EQS, 스피크업 같은 전문 업체들이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GRC와 기업 보안의 결합 미국에서는 2002년, 유럽에서는 2019년부터 상장기업의 신고 핫라인 운영이 의무화됐다. HR 어큐어티 조사에 따르면 임직원 1천 명 이상인 미국 기업의 90% 이상이 내부 신고 채널을 갖추고 있으며, 시장점유율 50%를 차지하는 내벡스(Navex)는 1만3천여 고객사를 보유하고 있다.이제 GRC는 윤리관리 시스템을 넘어 보안·데이터·AI 리스크까지 아우르는 기업의 핵심 인프라로 자리 잡고 있다. AI는 규정 위반과 보안 리스크를 조기에 감지하며, GRC는 그 투명성과 윤리성을 관리한다.워런 버핏은 “좋은 시스템은 1천쪽짜리 가이드북보다 낫다”며, 시스템의 목적은 통제가 아닌 문화를 지키는 일이라고 말했다.이제 기업의 하루는 다르다. 출근과 동시에 윤리 서약과 보안 점검이 시스템에 뜨고, 회의에서는 성과보다 리스크가 먼저 보고된다. 윤리와 기술이 맞물린 GRC의 톱니바퀴가 조직을 움직이고 있다. 법률시장의 대응이 흐름 속에서 로펌의 역할도 빠르게 바뀌고 있다. 국내외 주요 로펌들은 GRC 자문팀을 신설하며, 규제 대응·리스크 진단·내부 통제 설계를 아우르는 통합 자문을 제공하고 있다.변호사는 더 이상 사건이 발생한 뒤 법 조문을 해석하고 해결하는 전문가에 머물지 않는다. 데이터를 읽고 시스템을 설계하며, 조직의 ‘신뢰 프로토콜’을 관리하는 파트너로 역할이 확장되고 있다. 특히 글로벌 메가 로펌들은 ‘사건 이후 대응’에서 ‘사전 예방’으로 중심을 옮기고 있다. 일부 로펌은 AI를 리스크 관리 시스템에 연동해, 규제 변화와 내부 통제 문제를 실시간으로 감지하고 대응하는 체계를 갖추고 있다.예를 들어 Allen & Overy는 AI 계약 검토 시스템 ‘Harvey’를 도입해 리스크 탐지와 규제 문서 자동화를 실현했고, Sullivan & Cromwell은 AI 기반 리스크 분석팀을 운영해 각국의 규제 리스크를 조기 평가하고 있다.이러한 시도들은 GRC 자문과 직접 맞닿아 있으며, 법률 서비스가 기술·데이터·윤리 거버넌스를 포괄하는 형태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법과 기술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GRC’는 새로운 법률 인프라로 자리 잡고 있다.우리나라 기업과 법률 시장 역시 이러한 변화에 대응해야 할 시점이다. 용어 설명 ; GRC(Governance·Risk·Compliance)기업이 조직의 지배구조(거버넌스), 위험관리(리스크), 규정준수(컴플라이언스)를 통합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관리 체계다.윤리·보안·법규 등 다양한 리스크를 사전에 식별하고 대응함으로써 기업의 신뢰와 투명성을 높이는 것이 목적이다.최근에는 AI·데이터 보안·개인정보 보호까지 범위가 확장되며, 기업 경영의 핵심 인프라로 자리 잡고 있다. 
2025.10.21

[데스크 칼럼] 렉처스 온 탑, 바(Bar)에서 강연을 듣는다 우연히 검색을 하다 미국의 렉처스 온 탑(Lectures on Tap) 사이트를 발견했다. 페이지를 닫지 못하고 한참을 머물렀다.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주제가 줄지어 있었기 때문이다.‘AI 시대의 윤리’, ‘디지털 기억과 인간의 뇌’, ‘미래 도시의 사회학’.뉴욕, 보스턴, 시카고, 로스앤젤레스 등 주요 도시의 바 테이블에서 이런 강연을 진행하고 있었다. 10월과 11월 일정은 이미 모두 매진이다. 직접 참여할 수도 없는데 이상하게 아쉬웠다. 퇴근 후 친구나 관심사를 공유하는 사람들과 술 한잔 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가 우리나라에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식의 평준화 시대, 다시 오프라인으로렉처스 온 탑은 말 그대로 술 한잔과 함께하는 강연이다. 팬데믹 이후 온라인 강의와 AI 학습 도구가 일상이 되면서 지식의 평준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모니터 넘어 대면을 통한 오프라인 문화와 공간의 가치는 더욱 몸 값이 올라가고 있다. 한때 독서모임이 지식 교류의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바(Bar)에서 열리는 짧은 강연이 새로운 학습 문화로 떠올랐다. 그 중심에 ‘렉처스 온 탑’이 확고히 자리를 잡았다. 렉처스 온 탑의 방식과 확산이 프로그램은 2019년 워싱턴 D.C.에서 시작됐다. 지역 커뮤니티에서 인기를 얻은 Profs and Pints 모델을 발전시켜 뉴욕으로 옮겨오면서 본격적인 대중 강연 시리즈로 성장했다. 렉처스 온 탑이라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언제든 즐길 수 있는(on tap)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운영 방식은 단순하다. 교수, 예술가, 연구자, 스토리텔러 등이 펍 무대에 올라 약 40분간 강연을 진행하고, 이후 참가자들과 자유롭게 대화를 나눈다. 강연 전에는 20분 정도의 사교 시간을 갖고, 참가자들은 음료를 마시며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시작한다. 강의 이후 Q&A가 이어지고 나머지 시간은 서로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눈다. 2025년 10월 한 달 동안 뉴욕에서만 11개의 강연이 열렸다. 주제는 ‘와인과 대중문화’, ‘음악과 공포의 미학’, ‘기억의 재구성’, ‘스포츠 팬덤의 심리’, ‘빛의 과학’, ‘정치와 팟캐스트의 관계’ 등이다. 복잡한 이론보다는 일상 속 통찰을 중심에 두고, 감정과 인지, 문화와 미디어를 함께 탐구하는 융합형 강연이 주를 이룬다.강연은 이스트빌리지, 덤보, 미드타운, 윌리엄스버그 등 뉴욕의 다양한 지역에서 열리며, 대부분의 티켓은 공개 후 두 시간 안에 매진된다. 입장료는 약 40달러 수준이다. 강연자는 교수뿐 아니라 작가, 신경과학자, 음악가, 크리에이터 등 각 분야의 사람들이 함께한다. 지식을 나누는 새로운 장렉처스 온 탑은 지식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자리가 아니다. 주최 측은 “지식을 교실 밖으로 옮겨 사람들이 일상 속에서 새로운 주제를 접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히고 있다. 팬데믹 이후 대면 활동이 회복되면서 참여율은 꾸준히 상승했고, 10월 현재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는 44만 명을 넘어섰다. 미국 내 와이너리, 출판사, IT기업 등이 프로그램을 후원하며, 브랜드 경험과 지식 콘텐츠를 연결하는 교육 문화 마케팅 모델로 발전하고 있다. 서울의 성수, 연남동, 홍대에서도 북토크, 철학 강연, 작가와의 대화 같은 소규모 오프라인 프로그램이 늘고 있다. 이런 흐름을 따라, 곧 한국에서도 술 한잔 하며 관심 분야의 강연을 듣는 렉처스 온 탑형 문화가 시작되지 않을까 싶다. 아니, 어딘가에서는 이미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용어 설명 / “Lectures on Tap”Lectures on Tap은 2019년 워싱턴 D.C.에서 시작된 ‘술 한잔과 함께하는 강연’ 시리즈로, 바(Bar)나 펍(Pub), 카페(café) 같은 일상 공간에서 교수·예술가·연구자가 일반 시민과 지식을 나누는 프로그램이다. 지식의 민주화와 오프라인 교육의 재가치를 상징하는 새로운 학습 문화로, 미국 주요 도시에서 매진 행렬을 이어가며 브랜드·문화 업계의 협업 플랫폼으로 확산하고 있다. 
2025.10.17

[데스크 칼럼] 오래된 미래, 인간의 뇌 속으로 들어간 칩일론 머스크의 상상은 우주와 뇌에서 동시에 현실이 되고 있다. 그가 이끄는 우주기업 스페이스X의 대형 우주선 ‘스타십(Starship)’은 최근 11번째 무인 지구궤도 시험비행을 성공적으로 마쳤다.길이 123m의 초대형 로켓은 대기권 재진입까지 완수했고, NASA의 ‘아르테미스’ 달 착륙 임무에도 투입될 예정이다. 우주는 이미 그의 실험실이다. 우주만이 아니다. 인간의 뇌또한 실험 중이다. 일론머스크가 ‘뉴럴링크(Neuralink)’를 처음 설립한 때가 2016년, 꼭 10년 전이다. 그때 나는 일론 머스크의 공상적 사고에 쓴웃음을 지었다.인간의 뇌에 칩을 심어 생각을 읽고, 기계를 조작한다니. 그건 영화의 대사에나 어울릴 법한 얘기였다. 그런데 그때의 쓴웃음이 머슥해졌다.얼마 전, 일론 머스크의 뉴럴링크가 사람의 뇌에 이식한 칩의 임상 결과를 처음으로 공식 학술지에 공개했기 때문이다. 과학의 언어로 옮겨온 기술뉴럴링크의 임상시험을 맡은 마이클 로턴 소장은 뉴욕에서 열린 ‘뇌-이식 콘퍼런스’에서 “논문이 뉴잉글랜드 의학저널에 제출됐다”고 밝혔다. 논문에는 세 명의 환자에게서 얻은 임상 데이터가 담겼다.뇌-컴퓨터 인터페이스, BCI 분야에서 인간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첫 논문이다. 뉴럴링크는 오랫동안 화려한 동물 시연으로 주목을 받았지만, 과학계의 신뢰는 얻지 못했다. 이번 논문에서 사람들의 의심을 데이터로 대신 증명했다. 생각으로 조작하는 시대놀란드는 전신마비 환자였다. 20개월 전, 그는 뉴럴링크 칩을 이식받았다. 지금은 생각만으로 컴퓨터를 조작한다. 하루 7시간 40분씩, 어떤 환자는 일주일에 100시간 넘게 사용한다. 현재 12명이 이미 칩을 심었다. 총 사용 시간은 1만5천 시간을 넘어섰다. 속도는 놀랍다. 뇌 신호가 척수를 거쳐 근육으로 전달되는 속도보다 10배 빠르다. 손가락으로 타이핑하던 시대가 지나가고 있다. 이제는 생각만으로 명령을 내리는 세상이 열리고 있다. 기술의 진화, 그리고 인간의 불안이런 변화를 두고 뉴럴링크 공동창업자 서동진 박사는 말했다.“3년, 길어야 4년이면 건강한 사람도 뇌에 칩을 심을 것이다.”서동진 박사는 지난 9월 16일 서울 강연장에서 BCI는 스마트폰 이후의 플랫폼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칩이 심어진 뇌는 기억을 백업하고, 학습을 가속할 수 있다. 치매라는 단어가 사라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반가움 속에 밀려드는 불안함은 지울 수 없다. 영화가 먼저 보여준 미래얼마 전 영어 공부를 위해 영국 드라마 〈블랙 미러〉를 보다가 생각했다. 이런 뇌 기술관련 단어를 쓸 일이 있을까? 생각이 바뀌었다. 칩이 사람을 지배하는 시대, 곧 필수 암기 단어가 될 수도 있겠다. 〈매트릭스〉는 뇌에 꽂힌 잭으로 지식을 배우는 세상을 보여줬다.〈아바타〉는 인간의 의식을 다른 몸으로 옮겼고,〈블랙미러〉는 기술이 인간의 감정을 지배하는 미래를 경고했다.〈고스트 인 더 쉘〉은 인간의 의식이 데이터와 섞여 ‘나는 누구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상상해본다. 나는 뇌에 칩을 심을 용기가 있는가.만약 엄마가 치매라면,만약 가족이 장애로 고통받는다면,나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결과는 아무도 모른다.누군가에게는 유토피아, 또 누군가에게는 디스토피아가 될지도 모른다.그러나 유토피아(Utopia)란 본래 ‘이상향’이 아니다.그리스어 어원으로 보면 “not a place”, 즉 ‘그 어디에도 없는 곳’을 뜻한다.기술이 끝없이 탐험하고, 인간의 진보를 향해 문을 두드리고 있지만, 그곳은 여전히 ‘어디에도 없는 곳’일지도 모른다.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가 우주의 끝을 향해 로켓을 쏘아 올리고, 뉴럴링크가 인간의 뇌 속을 향해 칩을 심는 이유. 우리가 향하는 그 곳에 과연 무엇이 있을까? 오래된 미래가 나의 눈 앞에 있다. 용어 설명 / BCIBCI는 인간의 뇌 신호를 해석해 컴퓨터나 기계와 직접 소통하게 하는 기술이다. 신경세포의 전기 신호를 디지털 명령으로 바꾸어 생각만으로 기기를 조작할 수 있게 한다.현재는 의료 보조에 활용되지만, 미래에는 기억 저장이나 인지 능력 확장까지 가능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2025.10.14

[데스크 칼럼] 전관은 여전히 현재진행형, ‘후관’까지 생긴 법조계 최근 5년간 새로 임용된 법관 10명 중 1명이 김앤장 법률사무소 출신인 것으로 나타났다.12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인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의원이 대법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최근 5년간(2021∼2025년) 신임법관 임용 현황’ 자료에 따르면, 올해 신규 임용된 5년 이상 법조 경력자 법관 153명 가운데 로펌 등 변호사 출신은 68명(44.4%)이었다. 소속별로 보면 김앤장 출신이 14명으로 가장 많았고, 화우 6명, 세종과 태평양이 각각 4명, 광장 1명 순이었다. 전체 신규 법관 중 약 10%, 변호사 출신만 놓고 보면 약 20%가 김앤장에서 경력을 쌓은 셈이다.최근 5년간 신규 임용된 법관 676명 가운데 로펌 변호사 출신은 355명(52.5%)으로 절반을 넘었다. 이 중 김앤장·광장·태평양·세종·율촌·화우 등 대형 로펌 출신은 166명(24.6%)이었다. 로펌별로는 김앤장이 73명(전체 10.8%)으로 가장 많았고, 화우 24명, 세종 23명, 태평양 19명, 율촌 16명, 광장 11명 순으로 집계됐다.추 의원은 “대형 로펌 쏠림 현상이 여전하다”며 “법원행정처가 보다 다양한 경력의 법관을 선발할 수 있는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최근 법조계에서는 ‘후관예우’라는 말이 등장했다. 법원을 떠난 판사나 검사가 혜택을 받는 ‘전관예우’와 달리, 변호사 출신 판사가 예전 근무 로펌에 유리한 판단을 할 수 있다는 우려가 담겨있다. 전관은 여전하고, 그 뒤로 후까지 생긴 요즘의 법조계는 쓴 웃음을 피할 수 없다. 약속의 무게문형배 전 헌법재판관은 퇴임하며 두 가지 약속을 했다.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겠다는 것, 그리고 대한민국 평균 재산 4억 원을 넘기지 않겠다는 것이었다.그는 약속을 지키며 살고 있다.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하는 대신 글을 쓰고, 강연을 다니고 있다. 얼마전 MBC <손석희의 질문들> 에 출연한 그는 “문장이 아름다우면 생활이 피곤하다.”라는 말을 건냈다. 맞다. 원칙을 지키는 일은 불편함으로 돌아오기도 한다. 그러나 그 불편함을 뒤집어 보면 온전한 편함이다. 달라진 제도, 남은 관행법조계는 달라졌다. 로스쿨 제도가 정착됐고, 사건은 무작위로 배당된다. 전관 취업 제한 규정도 생겼다. 하지만 인식은 크게 변하지 않은 듯하다. 상담에서 고객이 먼저 전관을 찾기도 하고, 전관의 경력으로 계약이 이어지는 경우는 여전히 존재한다.하물며 전관의 형태는 다양해졌다.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지난해 9월부터 올해 8월까지 퇴직 경찰 98명 중 30명이 법무법인 취업을 신청했다. 세 명 중 한 명 꼴이다. 이들 중 절반 이상은 사무국장, 전문위원, 고문과 같은 자리로 이동했다. 수사 경험이 많은 경찰의 경력은 로펌 안에서 곧 경쟁력이다. 경찰청이 하반기에만 수사 인력 400명 이상을 새로 충원하면서 이 흐름은 더 커질 전망이다. 얼마전에는 부산에서 전직 경찰이 사무장으로 불법 취업해 사건 정보를 조회하고 수임료 일부를 챙긴 사례도 있었다.경제관료 출신의 로펌행도 꾸준하다. 최근 10년 동안 국세청, 금융위, 기재부, 공정위, 한국은행, 금감원 등에서 퇴직한 300명이 대형 로펌으로 자리를 옮겼다. 국세청 출신의 경우, 재직 시 연봉은 9천만 원이었지만 로펌에서는 8억 원에 달한다. 공공의 경험이 로펌으로 이동하면서 돈으로 바뀐다. 경력으로 쌓은 신뢰요즘은 ‘전관’이라는 단어 대신 다른 표현이 쓰인다. ‘○○변호사협회 회장’, ‘△△위원회 자문위원’, ‘○○연합회 고문’.법무법인 홈페이지 경력에 이런 직함이 끝없이 적혀있다. 협회의 타이틀이 곧 전관과 같은 형태로 우대된다.판사에서 변호사로, 검사에서 변호사로, 변호사에서 판사로, 다시 로펌으로. 이 흐름 속에서 법조계의 폐해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문형배 전 재판관의 말이 다시 떠오른다.“문장이 아름다우면 생활이 피곤하다.” 용어설명 : <전관예우>,<후관예우> 전관예우는 판사나 검사 등 고위 공직자가 퇴직 후 변호사로 개업해, 재직 당시의 인맥이나 영향력을 이용해 사건에서 유리한 대우를 받는 관행을 말한다.후관예우는 반대로 로펌 등에서 일하던 변호사가 법관으로 임용된 뒤, 자신이 몸담았던 로펌의 사건을 다루며 친정에 유리한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우려를 뜻한다.전관예우가 ‘퇴직 후의 특혜’를 의미한다면, 후관예우는 ‘복귀 후의 편향’을 지적한다.두 용어 모두 법조의 공정성과 독립성을 훼손할 수 있는 문제로 거론된다. 
2025.10.12

[데스크 칼럼] AI에게 이번 달 매입 종목을 물어보았습니다 돈 걱정이 끊일 날이 없다. 당장은 추석 연휴 후 이번 달 카드값이 걱정이고, 멀게는 노년의 삶이 걱정이다.누군가는 말한다. 돈 걱정이 제일 작은 걱정이라고. 하지만 그것만큼 절실하고, 늘 붙잡고 있는 걱정도 없다.그래서 AI에게 물었다.“이달에 500만 원으로 어느 종목 주식을 사면 좋을까?”AI는 이렇게 대답했다.“그건 제가 도와드릴 수 없는 영역이에요. 종목 추천은 투자 자문 행위에 해당합니다.”그리고는 대신 이렇게 덧붙였다.“요즘은 반도체, 2차전지, 방산 섹터가 주목받고 있습니다.”AI에게 부부싸움의 잘잘못을 %로 판정하게 하고, 오늘 점심 메뉴를 추천받는 시대다. 이제는 일상의 작은 선택부터 인생의 큰 결정을 AI에게 자문하는 일이 더 이상 낯설지 않다. 그 연장선 위에 ‘AI 재테크’가 있다. AI에 대한 불안감의 증폭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지난달 17일 미디어 서베이 ‘생성형 AI 확산에 따른 AI 불안 경험 및 인식’에 대한조사결과를 발표했다. 국내 20~60대 시민 1,000명을 대상으로 ‘AI 기술 발전 속도가 너무 빨라 자신이 따라가기 어렵다는 불안감을 느낀 적이 있는가’를 물었을 때, 응답자의 68.0%가 ‘자주 있다’(14.1%) 또는 ‘가끔 있다’(53.9%)고 답했다. AI의 속도를 불안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열 명 중 일곱 명에 가깝다는 의미다.이 불안은 특히 재테크 영역에서 높게 나타났다. 같은 조사에서 국내 성인 열 명 중 여섯 명(59.1%)이 AI 재테크 흐름에 뒤처질까 불안하다고 답했다. AI를 활용한 업무 지식 습득에서도 67.2%, AI 학습·교육 관련 불안은 54.9%로 나타났다.연령별로는 30대의 불안 비율이 64.5%로 가장 높았다. 사회생활을 막 시작하며 자산 형성의 압박을 느끼는 세대, 동시에 기술 변화 속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세대이기 때문이다. AI 재테크, 새로운 금융 습관으로 AI 재테크의 활용 방식은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 증권사 보고서를 요약하게 하거나, 기업 재무제표를 분석하게 하고, 투자 종목의 매수 타이밍을 묻는 식이다.응답자의 35%는 이미 생성형 AI를 실제 재테크에 활용하고 있었다. AI의 분석은 빠르고 답은 명료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판단을 ‘객관적’이라고 믿기 쉽다. 확률을 진실로 착각하는 위험최근 ‘헛소리(hallucination)’라 불리는 AI의 오류 현상은 줄었다지만, 비상식적인 판단이나 왜곡된 근거를 제시할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한다. 그 답이 옳다는 보장도 없다.금융권의 로보어드바이저나 AI 기반 펀드는 AI의 판단을 전문가가 재검증한다. 그러나 개인이 직접 AI의 조언을 받아 투자에 적용할 때는 안전장치가 없다. AI의 답변은 결국 데이터를 기반한 확률이며, 투자 결과에 대한 책임은 개인이 져야 한다. AI를 신뢰하기보다, 의심하는 습관을전문가들의 조언은 한결같다.“AI는 과거 데이터를 바탕으로 확률적인 답을 제시할 뿐, 결과는 개인의 몫이다. AI 모델마다 고유의 편향성이 존재하며, 같은 제품이라도 유료와 무료 버전의 답변이 다를 수 있다.”결국 AI의 조언은 여러 경로를 통해 재확인하는 습관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하지만 문제는, 나또한 그걸 알면서 여전히 반도체·2차전지·방산주를 들여다보고 있다는 것이다.그리고 또다시 AI에게 물었다.“ETF 포트폴리오 구성을 해준다면?”AI는 이렇게 대답했다.“ETF는 ‘무엇에 투자할까’보다 ‘어떻게 버틸까’의 문제에 가깝습니다.AI가 알려주는 섹터는 참고일 뿐, 진짜 투자는 시간과 습관으로 이뤄지는 일이에요.매일 종목을 바꾸는 대신, ETF 하나를 꾸준히 들여다보는 사람이 결국 시장을 이깁니다.”웃음이 났다.결국 투자에는 여전히 인간의 감정과 판단, 그리고 책임이 필요하다.투자는 아직도 기계가 대신해줄 수 없는 일이다.나도 알고, AI도 알고 있다. <용어설명> ETF(상장지수펀드)“ETF(Exchange Traded Fund)는 말 그대로 인덱스펀드를 거래소에 상장시켜 투자자들이 주식처럼 편리하게 거래할 수 있도록 만든 상품이다. 투자자들이 개별 주식을 고르는데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되는 펀드투자의 장점과, 언제든지 시장에서 원하는 가격에 매매할 수 있는 주식투자의 장점을 모두 가지고 있다. ”
2025.10.07

[데스크 칼럼] 기업 옥죄던 형법상 배임죄, 72년 만에 폐지 재계의 환영정부와 여당이 형법상 ‘배임죄’를 폐지하기로 하면서 경제계가 크게 환영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기업 의사결정의 불확실성을 줄이는 전환점”이라고 표명했고, 경총은 “규제 개선의 출발점”이라고 반겼다. 한국경제인협회는 “위축된 기업 활동에 활력을 불어넣을 계기”라고 했으며, 중소기업중앙회는 “앞으로는 투자와 고용 창출에 힘쓸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배임죄는 타인의 사무를 맡은 사람이 신뢰를 저버리고 자신이나 다른 사람에게 이익을 주는 경우를 처벌하는 조항이다. 문제는 이 규정이 너무 모호하다는 데 있었다. 정상적인 경영 판단까지 ‘배임’으로 엮이는 경우가 생기면서 기업인을 옥죄는 족쇄라며 오랫동안 폐지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실제로 최근 10년간 배임죄로 기소된 연평균 인원은 965명. 일본(31명)에 비해 무려 31배 많다. 일본과 독일은 고의가 뚜렷한 경우에만 처벌하거나 경영상 판단은 면책해 주고 있다. 제도적 배경지난 7월 국회를 통과한 상법 개정은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주주까지 넓혔다. 경영진의 부담은 더 커졌고, 배임죄는 부담을 배가시키는 족쇄로 작용할 수 있었다. 당정은 이번 개편을 통해 정상적인 경영 판단이나 주의 의무를 다한 경우에는 처벌하지 않도록 하고, 징역형이나 벌금형 대신 과징금·과태료 같은 행정 제재로 전환하겠다고 설명했다.정부가 내세운 기조는 명확하다. “형벌 만능주의에서 벗어나겠다.” 형사처벌보다 피해자 구제 중심의 민사 책임 강화가 앞으로의 방향이라는 것이다. 민사책임 강화배임죄를 폐지한다고 해서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책임은 어디로 옮겨갈까? 정부와 여당은 폐지와 동시에 민사적 책임을 강화하는 대안을 준비하고 있다. 징벌적 배상제, 집단소송제 확대, 그리고 디스커버리 제도의 도입이다.디스커버리는 기업 내부 자료를 법원이 강제로 제출하게 하는 장치다. 피해자가 입증에 필요한 자료를 손에 넣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집단소송제는 일부 피해자가 대표로 나서면 다른 피해자도 같은 효력을 얻는 제도다. 다만 지금은 증권 분야에만 적용되고 있다. 적용 범위를 넓히고 절차를 간소화하지 않으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다.법무부는 최근 5년간 약 3천300건의 관련 판례를 분석하며 대체 입법안을 준비 중이다. 주의 의무를 다한 경영자는 보호하되, 고의적·중대한 위법행위에는 강한 민사 제재를 가하겠다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법적 공백, 정치적 파장 우려배임죄는 그동안 경영진이 사익을 위해 회사 자산을 남용하는 것을 막는 장치였다. 우리나라처럼 대주주와 경영진 권한이 집중된 구조에서, 민사적 수단만으로 같은 억지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하는 우려는 여전하다. 피해자 보호 장치가 실제로 작동하지 않으면 법적 공백이 생긴다는 목소리도 크다.정치적 파장도 만만치 않다. 야당은 이번 조치를 “이재명 대통령 구하기”라고 비판하고 있다. 대통령이 대장동 사건에서 배임 혐의를 받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여당은 “윤석열 정부 시절에도 논의가 있었던 사안”이라며 정치적 의도와는 무관하다고 맞서고 있다. 하지만 국민 눈높이에서 보면 제도의 정당성이 정치적 이해관계와 얽혀 보일 수 있다는 부담이 존재한다. 지방자치단체장 등 공직자의 배임죄까지 함께 폐지하는 것이 옳은지에 대한 논란도 이어지고 있다.배임죄 폐지는 기업의 불확실성을 줄이고 경영 활력을 높일 수 있는 조치는 분명하다. 형벌에서 행정과 민사로 무게를 옮기는 흐름은 세계적인 흐름이기도 하다. 그러나 재벌 총수나 경영진의 책임을 어떻게 물을지, 피해자를 어떻게 보호할지가 선명하지 않으면 사회적 합의를 얻기 어렵다. 정치적 공방을 넘어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대체 법안이 꼭 필요하다. 결국, 중요한 것은 균형이다. 
2025.10.01

고흐의 기억, 얼마면 돼? 폐관 위기의 반 고흐 미술관전 세계 사람들에게 ‘고흐’는 어떻게 기억되어 있을까?‘고흐’를 모르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AI가 세상의 질서를 새로 쓰고, 숫자와 효율이 모든 가치를 대신하는 시대이지만, 고흐 그림의 기억을 돈의 가치로 계산할 수 있을까?「뉴욕타임즈」의 기사 속에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반 고흐 미술관이 폐관 위기에 놓였다는 소식을 접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반 고흐 미술관이 재정위기를 맞았다. 미술관은 작품 보호와 관람객·직원의 안전을 위해 약 1억400만 유로(약 1560억 원) 규모의 대규모 리노베이션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미술관은 건물이 50년을 넘어 심각하게 노후화되었으며, 국가 지원이 없다면 “문을 닫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그러나 정부와의 2년간 협의에도 불구하고 비용 분담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다. 현재 미술관은 매년 850만 유로의 정부 보조금을 받고 있다. 그러나 낡은 시설을 고치고 보존 장비를 교체하려면 1100만 유로로 늘려야 한다는 것이 미술관의 주장이다. 그러나 문화부는 이미 충분히 지원하고 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결국 법적인 절차가 시작됐고, 재판은 2026년 2월에 열리게 되었다. 이곳에는 반 고흐의 그림 200여 점, 드로잉 500점, 그리고 거의 모든 편지가 있다. 1962년, 조카 빈센트 빌렘 반 고흐가 국가에 모든 유산을 기증했다. 그때 정부는 건립과 유지를 약속했다. 1973년 문을 연 뒤, 이곳은 네덜란드에서 가장 인기 있는 문화기관이 됐다. 2017년에는 260만 명이 찾아와 기록을 세웠고, 지금까지 5700만 명이 다녀갔다. 운영비의 85%를 입장료와 민간 후원에 의존하고 있어 정부의 지원이 줄면 언제든 존폐의 위기에 놓일 수 있다는 입장이다. 숫자, 계산을 넘어서는 것이 존재한다 결국, 정부와 법적인 싸움에 들어갔다. 모든 일이 그렇지만 수익 계산은 필요하다. 정부는 돈 계산을 하고, 미술관은 약속과 예술의 시간을 계산한다. 빈센트 반 고흐는 생전에 그림 한 점밖에 팔지 못한 채 가난하게 살았다. 세상에 이해받지 못한 채 떠난 화가의 작품이 돈이 없어서 위험에 처했다는 소식은 그의 생전 삶보다 더 쓸쓸하게 다가온다. 만약 이 미술관의 문을 닫는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사라지는 것이 정말 미술관뿐일까? 예술은 치밀하게 계산하고, 돈으로만 매길 수 없다. 고흐 미술관의 존폐는 네덜란드만의 일이라고 치부할 수 없다. 
2025.08.29

여의도, 나는 직장인입니다여의도로 출근을 한다. 출근길에 낯선 풍경을 만난다. 빌딩 사이사이에 자리한 오래된 아파트. 그곳에서 어린아이들이 엄마, 아빠, 혹은 할머니,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등교를 한다.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슬며시 나도 모르게 웃는다. 처음에는 금융인, 언론인이 모여 ‘일하는 도시’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여의도의 주인공은 직장인이 아니라 이곳에 사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의 발걸음, 아침 조깅을 하는 사람들, 장바구니를 든 할머니의 걸음. 그런 풍경이 겹쳐져 여의도의 빌딩 숲은 단순한 일터가 아니라 생활의 공간으로 느껴질 때가 많다. 내가 여의도를 좋아하는 또 다른 이유는 오래된 도시 속에서 여전히 만날 수 있는 노포 때문이다. 상가 깊숙이 숨어 있는 만둣집, 미로 같은 통로 끝에서 만나는 곰탕집. 평양냉면, 칼국수, 어복쟁반, 닭볶음 같은 단출한 메뉴다. 그러나 그 단출함이 오히려 믿음을 준다. 수많은 가게가 생겼다가 사라지는 동안에도, 몇십 년째 같은 맛을 지켜온 꾸준함은 직장생활을 하며 느껴보지 못한 안정감을 준다. 아침마다 쏟아지는 뉴스 속에서, 각종 업무 단톡방의 말 속에서도 생각한다. “나는 점심에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어. 걸어서 5분만 나가면.” 그 사실 하나가 단단한 버팀목이 된다. 점심 식사 후 산책할 수 있는 ‘샛강’이 있는 것도 ‘너무’ 좋다. 여의도 샛강은 나에게 있어 ‘방점’과도 같다. 도로 램프를 내려가면 전혀 다른 세상이 열린다. 흐르는 물길, 나뭇잎을 흔드는 바람, 이름 모를 새 한 마리. 그 앞에 서면 소음이 멀어지고 긴 호흡이 가능해진다. 물소리와 초록빛이 섞인 공기가 몸 속으로 들어와 오전의 일의 무게가 잠시 가벼워진다. 회사에서 한 발짝만 나서면 ‘샛강도서관’이 있다. 규모는 크지 않다. 하지만 그 아담함이 더 좋다. 그날 그날의 기분에 따라 책을 빌려볼 수 있는 이곳은 여의도에서 잠시 다른 숨을 쉴 수 있는 곳이다. 샛강의 바람과 도서관의 고요. 서울, 어느 곳에 이런 곳이 또 있을까? 일은 늘 어렵고 힘들다. 관계는 지치고, 감정은 하루에도 수십 번 오르내린다. 그럴 때면 회사 로비에 나가 차 한 잔을 들고 창 밖을 바라본다. 빌딩 유리창 너머로 스치는 풍경이 잠시 다른 곳으로 데려다 준다. 오늘은 날씨 맑음. 날씨는 매일매일 이곳 사무실의 풍경을 바꾼다. 시야가 좋은 날, 한강은 햇빛이 번져나가고 국회의사당의 둥근 지붕, 멀리 아치형 다리까지 또렷하다. 며칠 전 폭우가 내렸다. 동남아에서나 내릴 것 같은 굵은 빗줄기, 창 밖 너머로 보이는 KBS의 안테나가 위태로워 보였다. 여의도 공원에는 사람들이 사라지고 섬안의 또다른 작은 섬처럼 보였다.나는 사무실 속, 빗방울 한 방울 닿지 않는 뽀송한 공간에서 밖을 바라보았다. 묘하게 마음이 흔들렸다. 이 빌딩 속 내가 서 있는 자리가 얼마나 불안정하고, 또 얼마나 안전한지 동시에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참, 사는 일은 묘하다. 창 밖은 섬이 되고, 사무실은 또 다른 섬이 된다. 나는 여전히 이곳을 떠나고 싶다가도, 또 이곳, 여의도여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떠나고 싶다는 마음과 머물고 싶다는 마음이 겹쳐질 때, 여의도는 묘하게도 더 선명해진다. 나는 직장인이다. 
2025.08.28
[사색의 창] “우리는 마케팅에 속고 있다” “제가 직접 써봤는데, 이건 정말 좋아요! 찐이에요, 찐!” SNS를 보다 보면 알고리즘에 의해 나오는 광고들이 있다. 제품 소개부터 후기까지 한 번에 소개하는 광고를 멍하니 보게 되고 ‘한 번 사볼까?’라는 충동구매의 유혹에 빠진다. 바로 그 순간에 이 글을 떠올리면 좋겠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서, 여러 마케팅 방법 중에 유독 소비자를 기망하는 형태의 마케팅이 있다. 필자가 손에 꼽는 기망 마케팅은 노이즈 마케팅, 스텔스 마케팅, 허위·과장 마케팅, (가짜)바이럴 마케팅이다. 마케팅 업계 일부에서는 자주 쓰고 있으나 공식적으로는 인정받지는 못하는 유형들, 자세하게 뜯어보자.노이즈 마케팅은 고의적으로 논란이나 구설수를 만들어 소비자의 관심을 받아 인지도를 올리는 방식이다. 실제로 소비자들은 논란이 생기면 ‘무슨 일이야?’라며 관심을 보이고 정보를 검색하기도 하니 어떤 방향이든 효과는 있는 것 같다.주요 타겟은 유행에 민감하거나 호기심 많은 사람들인데 그 사람들의 입을 통해 정보가 퍼지는 추가적인 효과까지 노릴 수 있다. 노이즈 마케팅은 브랜드 신뢰도를 걸고 하는 도박이 될 수도 있으므로 그나마 양반이라고 생각한다.스텔스 마케팅에는 흔히 PPL이라고 부르는 간접광고도 있고 마케터가 소비자를 가장하여 후기를 남기는 유형도 있는데, PPL이야 산업의 일부분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소비자를 가장하는 행위는 소비자 기망 유형 마케팅으로는 최고가 아닐까 싶다.신중한 소비자는 물건을 사기 전에 후기를 여럿 읽어보며 비교하기 마련인데, 그 후기 자체를 조작해버리면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혼란을 겪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필자도 후기를 비교하며 갈팡질팡하다가 결국 샀는데 실패한 경험이 있어서 더욱 그렇다.“최대 XX% 할인!” 이라는 문구를 본 적 있는가? 주로 동네마트 전단지에서 볼 수 있는데, 꼭 숫자는 크게 강조하고 글자는 작게 써놓는다는 불변의 법칙이 있다. 그리고 막상 가보면 그리 싸지 않다는 것 또한 불변의 법칙이다.이건 허위·과장 마케팅의 대표적인 케이스다. 실제로 최대 할인을 하는 품목은 극소수 혹은 제한적인 물량이고 그 외의 품목은 할인율이 낮거나 기존 판매가를 높인 후 할인을 하여 결국 제 값을 받는 방식이다. 말 그대로 허위·과장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정도는 이제 속지도 않는다. 정확히는 정말 그정도로 할인할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개인적으로 가장 안 좋은 방식이라고 생각하는 가짜 바이럴 마케팅. 본래 바이럴 마케팅이라는 것은 소비자의 자발적 공유로 입소문이나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정보가 확산되는 것을 의미한다. 거기에 가짜가 붙으면 더 이상 바이럴 마케팅이 아닌 것이다. SNS나 블로그에서 체험단이라며 홍보하는 것도 여기에 속하는데, 체험단 광고를 할 때는 어떤 내용을 필수적으로 넣어야 한다거나 긍정적인 방향으로만 써야 한다는 조건을 제시한다. 해본 사람은 어떤 조건이 붙는지 잘 알 것이다. 가짜 바이럴 마케팅이 진실된 리뷰의 진정성마저 훼손한다며 ‘찐후기’, ‘내돈내산’이라는 차별화된 키워드가 나타났으나 조금씩 잠식당하는 추세에 있다.이번 칼럼은 온라인에서 프라이팬을 구매했으나 품질에서 실패한 분노를 담아 작성했다. 그 전에도 고양이 모래, 의복, 화장품 등 분노할 일이 많았다. 매번 신중했다고 자신하지만 스텔스 마케팅에 속은 적도 있고, 몇 날 며칠을 검색하다가 고민 끝에 구매버튼을 눌렀는데 당한 적도 있다. 필자도 결국 마케팅에 속는 소비자에 불과한 것이다. 다시는 속지 말자는 취지로 분석 및 작성을 했지만, 글쎄, 과연 어떨지.
2025.08.12
